top of page
  • 작성자 사진sanB

애플TV+ 오리지널 <파친코>에 관한 글. 음악을 중심으로.

최종 수정일: 6월 13일



  2022년 애플TV 오리지널로 공개된 "파친코". 원작 소설에서 각색된 점을 비롯한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나는 드라마 작품 자체의 완성도면에서 좋게 평가한다. 매력적인 영상미와 연출이 돋보이며 작품성 또한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처음에는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극적인 감동을 잘 전달했다고 본다. 선자를 연기한 세 명의 배우와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절절히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8부작 안에 시대, 가치관, 인물을 넘나드는 연출을 잘 아우를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감동적인 작품의 음악과 관련된 포스팅을 하고자 한다.



 

작품 정보

시즌 1: 2022.03.25 / 시즌 2: 2024.08.23 (예정)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선정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Apple Original 시리즈 ‘파친코’ - Pachinko. 고국을 떠나 억척스럽게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한인 이민 가족 4대의 삶과 꿈을 그려낸 대하드라마.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에 빛나는 윤여정과 더불어 이민호, 진 하, 김민하 등 출연.




 

음악감독


Nico Muhly (니코 멀리)


  미국에서 현대 클래식 작곡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니코 멀리가 음악을 담당했다. 그는 "필립 글래스"(20세기 후반 가장 영향력있는 작곡가)의 아끼는 제자이기도 하다. 필립 글래스는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인데, 그의 음악 어법이 니코 멀리 음악에서 역시 드러난다. 영화/드라마 작업 이전부터 실내악, 교향곡, 오페라 등 클래식 분야에서 이미 거장인 그는 팝스타 아델의 음악 "When We were Young"에서 하모늄 연주를 하기도 하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여러 수단으로 활동하는 열정 있는 작곡가이다.


"Choral Music Is Slow Food for the Soul"

  어린시절 합창단을 하며 교회음악에 깊이 빠져들었고, 자신이 '탤리스'나 '버드' 와 같은 르네상스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합창음악이 좋은 이유는 "합창 음악은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음악이 아니어서", 또 "더 친밀하게 의사소통하는 느낌이어서"라고 하는데, 확실히 그의 음악은 천천히 듣다보면 의도한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오페라 작곡에도 큰 열정을 보였고, 메트로폴리탄에서 오페라를 위촉받은 최연소 작곡가이기도 하다. 아무튼 대단한 작곡가이다. 오늘 다룰 파친코 음악에도 합창과 목소리를 많이 활용했다.



 

파친코에서의 음악

  '파친코'라는 작품의 배경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과 그 후 한국인 이민자들이 겪은 역경을 중심으로, 그 가운데 존재하는 삶을 그려낸다. 이 작품의 음악 작업을 미국의 백인 작곡가인 니코 멀리가 맡은 것은 조금 의외일 수 있는데, 니코 멀리 본인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제작자 수 휴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 “동아시아 음악을 원한다면 다른 사람을 고용해야 할 겁니다”였다. 파친코의 음악은 한국이나 일본의 전통적인 색채가 드러나지 않는다. 니코 멀리는 이 작품에서 음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캐릭터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품 전체에서 악기 편성은 "5명의 바이올린, 1명의 비올라, 1명의 첼로, 플루트, 오보에, 솔로 보이스"로, 전형적인 클래식적인 편성이다. (이후 언급하겠지만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등장하기는 함.) 또한 하나의 특정 주제가 무한 반복되며 확장되는 작곡가의 미니멀리즘 음악 스타일이 돋보인다.


  1900년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4세대에 걸친 조선, 일본,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파친코'에서 민속음악이나 구체적인 전통 악기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타당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는 작품이 담고 있는 "정체성"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더 보편적이고 깊이 있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또한, 니코 멀리 특유의 두꺼운 텍스처가 주는 무거운 감정들은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작품 전체의 깊은 감정을 느끼게 하고, 각 캐릭터의 내면에 집중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파친코'가 단순히 역사적 배경을 묘사하는 것 이상으로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전달하는 것에 음악이 큰 기여를 했다고 느낀다.



I. 니코 멀리의 인터뷰 발췌 내용


Q. 주요한 스코어(음악)은 무엇인가요?

A-1. 1화의 마지막에서 한수가 생선 시장에서 선자를 보는 장면을 위한 곡이 주요했습니다.



  "Hansu Sees Sunja"는 부산 시장에서 한수가 선자에게 첫 눈에 반하는 장면에 흘러나오는 장면이다. 관동대지진에서 아버지를 잃고, 학살당하는 조선인을 보며 일본 야쿠자의 밑으로 들어가 험한 삶을 살아온 한수가 강단있는 선자를 보고 반하는 장면. 순간의 미묘함과 절절한 정서가 느껴진다. 4마디의 주제가 음악 전체를 두고 반복되며 발전한다. 처음에는 피아노 주제로 시작되는데, 점차 현악기 멜로디가 쌓이고, 현악기 트레몰로가 쌓인다. 트레몰로는 떨리는 마음을 표현한 것도 같고, 피아노의 고음역대 화음 타건 시퀀스는 아름다운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악기와 음역대별로 텍스쳐가 두텁게 쌓이는 작곡 방식도 발견할 수 있다. 음악의 마지막 부분에 울림을 크게 주며 끝나는 것 또한 음악에 얼마나 연출적인 섬세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A-2. 흰 쌀밥을 만들 때의 합창 음악을 제대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White Rice"는 선자가 남편 이삭을 따라 일본으로 떠나기 전날 밤, 어머니가 처음으로 흰 쌀밥을 해주는 장면에 나오는 음악이다. 당시 조선인들은 쌀밥을 먹기 어려웠기에, 어머니는 딸에게 마지막으로 쌀밥을 해줄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가난의 설움과 하나뿐인 딸을 보내야 하는 슬픔도 함께 담긴 장면이다.

  니코 멀리는 이 장면에서 합창 음악을 선택했다. 많은 합창 음악은 기본적으로 수평적 구조를 따르며, '호모포니'(화성적 반주가 필요한 음악) 대신 '폴리포니'(각 성부가 수평적으로 흐르는 음악) 형태를 취한다. 이는 각 성부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방식을 뜻하며, 필연적으로 협화와 불협화를 반복하게 된다. 합창 음악은 특정한 화성의 분위기를 강조하지 않으며, 각 성부의 소리가 어우러지며 만들어진다.

  이 장면에서 사용된 합창 음악은 직설적으로 슬프지는 않다. 가장 비통한 순간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쌓여 만들어진, 다소 절제된 슬픔을 표현하는 음악은 주어진 시간과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들의 무력함을 객관적으로 잘 보여준다. 비극적인 상황과 그로 인한 감정의 복잡함을 깊이 있게 드러내며, 그들이 처한 현실의 냉혹함을 전달한다. 어머니의 안도감과 슬픔, 가난의 설움, 딸을 보내야 하는 감정선이 합창 음악을 통해 더욱 섬세하게 표현된다.


 

II. 음악 편성(재료)의 아이디어


  두 시대적 배경(1930년대와 1980년대)을 지닌 4대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현악'(전통적인 악기)'일렉트로닉'(전자음)을 혼용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방대한 내용을 하나의 이야기로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음악이 너무 주제적으로 작동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악은 이 가족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그들을 이동하게 만든 더 큰 힘들과 그 시기에 그들에게 닥친 모든 끔찍한 일들에 대해 다루는 거대한 다리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소리가 어떤 면에서는 부적절하다고 느꼈습니다. 이 작품은 거대한 서사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비극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물들 사이에서 작은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저는 오케스트라가 거대한 공간을 채우면서도, 동시에 매우 밀접한 환경에서도 존재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80년대로 우리를 데려가면서도 음악을 멜로 드라마처럼 만들고 싶진 않았습니다. 대신, 그 시대의 초기 사운드가 배경에 자연스럽게 떠다니는 것처럼 만들고 싶었습니다."



  "Stampede"는 관동대지진 사건이 발생하는 상황에 나오는 음악이다. 한수가 아버지와 함께하는 여느 날과 다름 없던 날, 갑작스러운 대지진에 하루 동안 아버지를 잃고, 함께 피난가던 미국인 가족과 헤어진지 얼마 안되어 그들의 시체를 발견하고, 억울하게 학살당하는 조선인 동포들을 본 한수는 이 일을 계기로 순수하던 청년에서 180도 다른 인물이 된다. 그 하루 동안 한수가 느낀 무력함, 상실감, 두려움을 이 음악에 담았다. 작곡가 본인의 말처럼 클래시컬한 악기 만으로는 이 참담함을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수가 두려움에 울부짖는 장면에서는 모든 소리가 out 처리 된다. 과연 모든 사운드 연출이 경이롭다.



III. 주제 선율


  "제작자 수 휴와 함께 하는 것은 매우 쉬었습니다. 그녀는 촬영되기 전부터 이 모든 것에 대한 완전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모든 음악을 이미 지정해 놓았습니다. 이는 제가 시작하고 헤쳐나갈 수 있는 좋은 틀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저는 적절한 곳에 배치될 수 있는 긴 음악 조각들을 작곡했습니다. 서사적이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어린 선자에 대한 음악이었습니다. 이것이 전체 작품을 관통하는 주 재료입니다. 이 이야기는 매우 개인적이지만, 식민지 이야기이기도 하고, 대규모 이민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제 음악이 접착제처럼, 다리처럼, 캐릭터와 함께 하면서도 약간 위에 떠 있는 방식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입니다."



<선자의 Theme>





  작품 1화, 어린 선자가 들판에서 노는 장면에 음악이 등장한다. 고향에서 아버지와 함께 노닐던 평화로운 시절의 선자를 주제 선율이 비올라로 연주한다.




  전복 캐는 어린 선자를 아버지가 바라보는 장면에 흐르는 음악. 음악의 후반부 3:15부터 선자의 주제 선율이 바이올린으로 등장한다.




<한수의 Theme>


  한수가 등장하는 중요한 장면에 흐르는 주제 음악이다. 한수가 처음 선자를 알게 될 때, 또 선자와 가까워질 때 연주되는 음악이기에 어쩌면 "한수의 Theme"보다도 "선자를 사랑하는 한수의 Theme" 정도로 표현하는게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I.의 내용과 중복되는 음악이지만) 한수가 선자를 보는 장면에서의 음악. 주제 선율에서 이미 울렁이는 감정선이 느껴진다.





  시장에서 일본인들에게 농락당할 뻔한 선자를 한수가 구해주고, 돌아가는 길에 한수는 14년 만에 일본에서 조선으로 돌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둘은 대화를 나누며 경계를 낮추고 가까워진다.

  위 음악의 51초 구간부터 한수의 주제가 등장한다. 멜로디는 약간의 변화가 있지만, 화성적으로는 주제 음악 4마디가 동일하게 진행되며 음악이 반복 확장된다.



 

마무리

  "파친코"라는 작품은 한 가족의 역사를 통해 이민자들이 겪은 고난과 생존, 그리고 가족의 유대감을 보여준다. 동시에, 거대한 시대적 상황에 처한 인물들이 직면한 문제와 이를 극복해 나가는 여정을 그려낸다. 작품의 크고 작은 부분까지 섬세하게 생각하며 완성한 작곡가의 노력과 이 사운드트랙에 경의를 표합니다.


올해 8월에 시즌 2가 공개된다고 하니 매우 기대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s


bottom of page